"자 여러분 공지."
개학 2차시. 나는 교실에 들어가, 칠판에 QR 코드를 띄웠다. 미리 만들어둔 오픈채팅방에 아이들을 초대한다. 맡게 된 아이는 10개 학급, 290명.
이 아이들을 하나의 오픈채팅방에 모으기로 했다. 오픈채팅방의 이름은, <영어 1:1 개별화 맞춤형 질문방>.

채팅방의 규칙은 다음과 같다.
1. 이 채팅방은 기본적으로 "영어 공부를 하다가 모르는 것이 생겼을 때" 즉각 질문을 하는 것임. 그러므로 새벽이든, 주말이든, 언제든 질문을 톡방에 올리는 것이 가능함.
2. 알림은 꺼둘 것. 290명이 모여서 밤낮없이 질문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알림 소리가 방해될 수 있음
3. 내가 질문에 대해 답을 해주는 것은 즉시 되진 않을 수 있음. 운전, 수면, 개인 사정 등으로 질문에 대한 답변은 느릴 수 있으니 양해바람
4. 공부 이외에 사담을 하는 것은 강퇴함
5. 익명.
우리 수업의 목적은 AI와 디지털 교육 서비스(에듀테크)를 활용하여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사의 1:1 코칭을 최대한 메워주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오픈채팅방을 2020년 코로나 창궐 시기에 처음 만들어, 학교에 오지 못하는 아이들이 겪는 교육적 환경조성의 공백을 완화하려고 노력한 바 있다.
코로나가 학교에서 후퇴하고, 마스크를 쓴 아이들도 거의 없어진 지금 다시 오픈채팅방을 만드는 것은, 그만큼 1:1 개별화 코칭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며, AI 활용 교육을 지도하는 입장에서는, 먼저 교사가 1:1 개별화 코칭을 해주면서 차차 그러한 코칭을 AI와 함께 아이들이 스스로 해볼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함이다.
경기도교육청에서는 올해 AI 활용 수업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그러한 정책의 핵심은, 아이들이 발전된 AI를 활용해서 궁금한 것을 스스로 해결해볼 수 있도록 하여 학력격차를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을 가정하는데, 이러한 "스스로 해결"의 경험을 교사의 수업 설계를 통해 누적시키고, 차츰 AI의 활용도를 높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아이들이 이 오픈채팅방을 1:1 개별화 질문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먼저 같이 이 채팅방을 써볼 수 있도록 했다. 카톡 창을 오른편에 띄워놓고, 화면 왼쪽에 선 내가 수업을 진행한다. 그리고 수업 중간에 샘플링이 가능한 문장이 나오면, 그 문장을 영작해볼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할당한다.
"자, 혹시 되는 사람은 여기 문장 영작해서 톡방에 올려보세요. 2분 기다려보겠습니다."
"톡방에요?"
"응. 수업 때 먼저 써보면 너희들이 나중에 질문도 하기 쉬워질 테니까."
나는 아이들이 톡방에 올릴 때까지 기다려준다. 30명의 아이들 중, 적어도 한 두명은 톡방에 영작 과제를 올려는 준다. 어떻게 참여율을 올릴까? 음, 나는 계획이 있다. 그건 다음 기회에.

잠시 뒤, 몇몇의 아이들이 영작을 올린다. 어떤 아이는 어순을 실수 하고, 어떤 아이는 be 동사를 실수한다. 비교급을 안 쓴 아이도 나왔고, you knows라는, 기초적인 실수를 하는 아이도 나왔다. 일부러 익명으로 들어오도록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아이들이 보는 바로 앞에서 즉각 영작을 피드백해주니, 수업의 몰입도는 높아진다.
원래 나는 이런 영작 중심 수업을 2016년부터 상당한 전문성을 얻어낼 수준으로 지도했는데, 그러한 기조의 수업을 현재는 동의를 얻어내지 못하다보니 자연스레 내 수업에서도 아이들의 영작 참여가 상당히 떨어진다. 원래라면은, 개학하자마자 이렇게 영작 과제를 부여하고 칠판에 나와서 써보라고 하면, 아이들은 어지간히 쓰지 않는다. 그러나 카톡을 켜놓고 바로 아이들이 톡한 걸 올려주니, 반응은 긍정적이다. 아이들이 엉덩이를 의자에 붙인 상태에서도 영작을 할 수 있고, 못했다고 누가 놀리지도 않도록, 익명이 보호해준다. 틀릴 수 있는 용기가, 마련된다.

영작 활동이 끝난 뒤, 나는 일일이 아이들의 답변을 가리기 기능을 통해 채팅창에서 보이지 않도록 했다. 10개 학급에 반복해야 하므로 다른 학급의 영작 참여 내용은 불필요하다. 많은 아이들이 참여하면 나의 마우스 클릭질은 늘어난다. 그러나, 아이들과 대화하며 잠시의 클릭클릭으로, 다시 채팅창은 말끔해진다.
개학 2주차, 2주차의 3일째. 10개 학급 중 아직 절반 약간 안되는 수가 해당 안내를 받고 채팅방에 들어왔다. 10개 학급이 다 들어오면 나는 본격적으로 채팅방에 아이들의 개별화 공부를 북돋을 수 있는 자료를 올리기도 할 것이고, QR코드보다 효과적으로 자료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채팅창을 그냥 수업 중 띄워놓고 함에 있어서 위험요소는 많다. 가장 위험한 것은 야한 사진 등, 수업 중에 카톡 창에 위험한 자료를 띄울 수 있다. 이런 점은 사전 사후 윤리교육을 철저히 하고, 혹시라도 그런 일이 발생했을 시에 차분히 대응하는 것이 권장된다. 코로나 이후, 학급마다 반톡이 개설되어 담임이 있는 방과 담임이 없는 방에서 아이들이 따로 모여서 논다. 그 공간에서 아이들이 나름의 선을 지키며 공존공생 중인데, 그곳에서 아이들이 어느 정도 통제력을 발휘하고 있다면, 수업 때 이런 기법을 활용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은 교사 개인, 내 성향 상, 틀어막아서 될 일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이미 모여서 왁자지껄 떠들고 논다. 수업 때 공개적으로 채팅창을 보여주면서, 학습 이외의 내용은 올려선 안된다고 주지하고 진행하는 방식이므로 아이들에게도 어느 정도는 지도력이 전달될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핸드폰을 이처럼 수시로 쉬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지만, 이미 교육정책은 명확하게 "미래교육"이라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학급마다 개인 태블릿 혹은 크롬북이 배부되고, 아이들은 수업 때 그것들을 내내 올려두다. 교육청의 입장은 전자교과서 도입까지 바라보고 있다. 이미 들을 아이들은 듣고 놀 아이들은 수업 때 선생님이 앞에서 설명하는 동안 뒤에서 에어팟 끼고 넷플릭스를 본다. 이것은 워낙 복합적인 학력격차 상황이고 크롬북이나 폰을 수업 때 활용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수업에서 카톡을 띄워놓고 이런식으로 발표나 수업참여를 고무하는 것에서 얻어지는 득보다 크진 않을 것 같다.
마침 화면 크기도 적당하고, 나는 우선 당분간은 이렇게 해서 수업을 해볼 작정이다. 완전한 아이들의 자기주도적 학습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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